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홍콩 영화 (문단 편집) === 1990년대 ~ 2010년대 === 홍콩 영화는 19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쇠퇴기를 맞이한다. 이것은 이미 예견된 일로 1984년 [[중영공동선언]]에 의해 1997년에 홍콩반환이 확정되었다. 이 선언에 홍콩의 자유가 보장된다는 조항이 있었음에도 1989년 '''[[천안문 항쟁]]'''이 일어나면서 중국의 민주화를 요구하던 세력이 어떤 대우를 받았는가를 똑똑히 목격한 홍콩인들은 그 조항이 허울에 불과하다는 공포감이 휩싸였고 반환일인 1997년 7월 1일이 다가올수록 그 공포감은 커졌다. 이 여파로 문화대혁명을 소재로 하거나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들은 제작 중단되거나 상영이 금지되었고, 설사 개봉되었어도 홍콩에서 흥행에 크게 실패하거나 대륙에서는 상영이 금지되었다. 그 여파로 많은 일반 홍콩 시민들은 물론 영화인들도 다가올 중국의 억압 통치를 피해 캐나다나 호주 등으로 이민 가 버렸다. [[장국영]] 같은 이들도 캐나다로 국적을 바꾸기도 했다. [[밴쿠버]]에 있는 비싼 [[저택]]은 거의 [[홍콩인]]들이 대거 구입했다. 하지만 서구권으로 진출한 이방인들이 홍콩에서의 영화 커리어를 이어간다는 것은 불가능했고, [[주윤발]]은 미국 영화와 영국 영화 시장에서 스테레오타입에 국한된 배역으로 계속 겉돌았고, [[성룡]]은 특유의 [[코믹]] [[중국권법|쿵푸]]로 좀 더 성공했지만 끝내 안착하지 못했다. [[서극]]이나 [[오우삼]] 같은 연출자들은 이들보다는 진출이 더 쉬웠지만, 결과적으로 이들도 할리우드 주류로 자리잡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렇게 1990년대 중반 홍콩을 떠났던 배우나 스탭들은 2000년대 초반까지는 대부분 홍콩이나 중국 본토로 다시 돌아와서 영화를 찍게 된다. 2000년대 초반 《[[무간도]]》(2002)가 개봉하며 반환 이후 후퇴되어있던 홍콩 느와르의 부활을 알리며 히트를 쳤지만, 이후 나온 [[무간도 II: 혼돈의 시대|속]][[무간도 III: 종극무간|편]]은 1편만큼 폭발적인 흥행을 하지 못했다. 그 후에는 홍콩 영화 자체가 쇠퇴기를 맞으면서 [[콜드 워(2012)|콜드 워 시리즈]]와 《[[엽문(영화)|엽문]]》, 《[[쿵푸허슬]]》, 《[[흑사회(영화)|흑사회]]》를 제외한 그 이후의 영화들은 예전처럼 폭발적인 흥행력을 보여주는 작품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2003년 [[장국영]]의 자살이 홍콩 영화의 종말이라고 평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자국산 영화가 성장하고, 할리우드 직배가 대세가 된 한국에 이제 홍콩 영화는 거의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광동어로 제작되는 영화는 세대 교체도 잘 안되고 있어서, 20대 홍콩 배우들 중에서 장국영이나 주윤발처럼 폭발적인 주목을 끄는 배우는 하나도 없다.[* 다만 장국영은 화제성에 비해 흥행성은 상당히 낮은편이다. 공동 주연을 맡았거나 명절 특수를 노린 영화들은 흥행성적이 좋지만 장국영 단독으로 출연한 영화들은 상대적으로 흥행성적이 좋지 않다. 흥행성을 따지면 주윤발, 주성치나 성룡 혹은 유덕화가 더 높고 단독으로 출연한 영화들이 성공을 거두기도 했고 출연만으로도 화제성이 높기도 했다.] 홍콩 시장은 좁고 중화권으로 반경을 넓혀도 최소한 8, 90년대 전성기를 이끈 홍콩배우들의 포스를 이어줄 배우가 전무한 상태이다. 그러니 60대 환갑에 접어든 [[유덕화]], [[양조위]]나 50대 중반을 넘기고 있는 [[여명]], [[장학우]], [[금성무]], [[곽부성]]을 포함한 50·60대 남자배우들이 30·40대 역할을 맡고 있는 형편이다. 더불어 2010년대에 들어서는 홍콩 금상장 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자도 2011년 30회 시상식에서 [[사정봉]]이 31세에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이후로 3,40대 배우들 중 현재까지 수상자가 없다. 1980년대에 20대 나이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양가휘]][* 현재에도 20대 나이에 남우주연상을 받은 유일한 배우다. 80년대 후반까지 20대 나이에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이들 중에는 [[장국영]], [[양조위]], [[유덕화]]도 있었다. 하지만 90년대에 접어들면서 이들도 30대가 되었고, 1991년 주성치가 만 29세로 남우주연상 후보로 오른 이후 2,30대 나이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배우는 한 동안 없다가 2011년 사정봉과 2020년 '소년시절의 너'의 이양천새였다.]를 포함하여 1990년대 중, 후반부터 시작된 홍콩영화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할 때 부터 2000년 대 중반까지 당시 홍콩배우들이 3,40대에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거나 후보에 올랐던 것 과는 정 반대 상황이다. 그나마 [[유청운]]이나 최근 홍콩 최고의 스타배우로 등극한 [[고천락]], 오진우, 임가동, 장가휘 등등도 현재 나이가 50대를 넘겼다.[* 이 들도 연기경력이 평균 30년 되는 중견배우다.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은 시기는 90년대 후반 부터다. 장가휘는 배우보다는 액션 스턴트 맨과 제작부에서 오랫동안 일하다가 배우로 넘어온 케이스.] 최소한 홍콩 영화계가 쇠락기에 접어들기 시작한 80년대 말부터 신인배우들을 육성했어야 하는데 그럴 시스템이 방송국 배우 양성반 외에는 하나도 없었고 설사 신인배우들이 생겨났어도 기성 배우들이 수십년간 주연급으로 활동한 탓에 기회를 잡기가 아주 어려운 상태에서 반환을 맞이하다보니 배우 생활을 더 이어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아예 연예계를 떠난 케이스가 의외로 많다. 그만큼 신인 육성에 투자가 제대로 안되다 보니 배우 세대교체가 안 되고 있다는 증거.[* 여자 배우들은 대부분 40세가 되면 은퇴루트를 타거나 활동빈도가 확 줄어들어 이들을 대신할 젊은배우들로 교체되기에 세대교체 빈도가 많았다. 남자배우들도 사실 세대교체에 성공할 기회는 있었다. 1990년대 초반, 홍콩영화의 정점이자 내리막길로 접어들던 시기에 그 동안 느와르나 무협장르에만 치중하다가 조금씩 다양한 소재들의 영화들이 제작되고 나름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다. 90년대 초중반 금상장 남우주연상 수상자들만 봐도 각자 수상한 작품들의 소재나 장르가 다양했는데, 덕분에 세대교체는 어느정도 되는 듯 했다. 문제는 이들의 뒤를 이어줄 신진배우가 없고, 흥행성이 좋은 남자배우 위주로 제작하다보니 기회를 날린것도 있다.] [* 홍콩인들이 90년대 초반부터 자국영화를 외면하기 시작했는데, 현재도 그런 이유가 '그 나물의 그밥'인 배우층 때문이다. 수십년간 쌓아온 정형화된 이미지가 대중들에게 깊게 박혀 어떤 배우가 새 작품에 나오면 예측 가능한 스토리와 이미지가 연상되어 굳이 돈 내고 극장 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엎친데 덮친격으로 대륙에서만 활동하던 배우들이 80년대 초부터 홍콩으로 넘어오기 시작하여 90년대 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하게 되면서 홍콩 배우들은 대만, 대륙 배우들과 총성없는 경쟁을 하게 되었다. 2000년대 들어 대륙배우들 중 [[금상장]] 수상자가 나온게 그 증거. 그나마 여배우들은 30대 여배우들을 중심으로 젊은 여배우들이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 있고 남자배우도 최근들어 갓 스무살에 접어든 배우 이양첸시가 2020년 39회 금상장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는 등 완전히 기대를 접을 상황은 아닌듯 하나 2010년 중반부터 조금씩 배우 세대교체가 되고 있는 [[대만 영화]] 시장과 비교하면 홍콩 배우 연령층이 더 심각한 상황이다. 그나마 이양첸시는 대륙배우임을 감안하면 홍콩 내에서 큰 두각을 보이는 젊은 배우는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할 정도. 특히 홍콩 영화 액션 스타는 [[견자단]]을 마지막으로 사실상 그 계보가 끊겼다. 물론 신진 홍콩 액션 배우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성룡]], [[이연걸]], [[견자단]]과 같은 압도적 위상과 인기를 지닌 액션 스타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나마 유일한 보루였던 장가휘 마저도 정극 배우로 빠져버렸다. 이 시기에 주목해야 할 신흥 배우 겸 제작자는 바로 [[주성치]]이다. 홍콩 영화의 전성기가 지난 다음에 뜨기 시작한 주성치는 전반적으로 홍콩 영화가 쇠퇴하는 가운데서도 홍콩 특유의 막가파 개그를 계승, 발전시켜 중화권 전체에 어필하여 대성공을 거두었다. 독특한 유머 코드와 특수효과, 적절한 멜로를 버무려 팔릴 만한 작품을 만드는 영화적 재능으로 암흑기를 맞은 홍콩 영화에서 홀로 빛나는 별. 그러나 2019년 감독한 [[신희극지왕]]이 엄청나게 폭망하면서 2023년 현재까지 감독 활동을 무기한 중단한 상태. 2020년, 자금난으로 인해 자신이 소유하고 있었던 주택을 담보로 2000억에 이르는 거액의 대출을 받은 사실이 알려졌다.[[https://www.yna.co.kr/view/AKR20200618169700074|#]] 2010년대부터는 보통화 영화만 만드는 등 중국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그런데 2010년대 서유기, 장강7호, [[미인어]] 등 주성치 영화의 특수효과는 대부분 한국 CG업체가 수주했다. 영어판 크레딧을 보면 한국 스탭의 이름이 줄줄이 나온다. 대부분의 홍콩 영화사도 현재 중국 자본에 넘어갔고, 홍콩 영화인들도 대부분 대륙에서 활동하거나 중국의 위안화에 연명하는 현재의 상황을 감안할 때, 1980년대처럼 홍콩 영화가 중국 본토 영화계와는 독자적으로 재기하기에는 사실상 어려운 실정이다. 이는 대만 영화계보다도 더 심각하다고 봐야 할 지경. 현재는 홍콩의 연예인 지망생들도 대부분 중국 본토에서도 데뷔하려는 실정이다. 좋은 각본이 있으면 대부분 중국 영화쪽으로 넘어가서 제작되며, 중국의 검열기준에 어긋나는 영화는 제작될 수 없다. 홍콩 자체 문제 때문이 아니라, 홍콩 영화는 다른 나라에서는 힘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홍콩영화의 최대시장이 중국시장이 되어버린 만큼, 중국시장에 걸 수 없는 영화는 제작이 어렵다. 설령 제작이 완료되어도 최소 3,4년이 지나거나 길게는 5년이 넘어야 개봉을 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다. 한 때 홍콩 영화판을 주름잡은 배우들은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나이가 최소 50대 중반이니 조연급으로 내려오거나 배우 생활을 어느정도 접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대체 할 젊은 배우들이 너무 부족하여 계속 주연급으로 활동하니 '홍콩 영화는 너무 올드하다'는 현지인들의 불평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2014년 홍콩 우산 혁명]]과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에서 많은 영화인들이 편가르기를 하게 되었다. [[주윤발]], 하운시나 [[황추생]], 엽덕한 등은 시위를 지지했으나, 이에 반해 [[성룡]], [[증지위]], [[양가휘]], [[임달화]], [[알란 탐]] 등은 중국 당국의 조치를 지지하였다. 중국 공산당이 시위를 지지하는 배우들의 영화 출연을 못하게 압력을 불어넣고 있기에 편이 갈리고 있던 시위였다.[* 2014년 우산혁명 시위를 지지했던 영화인들조차 자신들이 받은 불이익과 더욱더 강경해진 정부 및 경찰의 조치가 두려웠기에 2019년 시위때는 직접 나서지도 못하고 침묵할수밖에 없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